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플라자 합의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[[1985년]] [[9월 22일]]에 [[프랑스]], [[서독]], [[영국]], [[미국]], [[일본]]의 재무장관들이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 남단 5번가에 위치한 플라자 호텔[* 1907년에 지어진 뉴욕 플라자 호텔은 영화 [[티파니에서 아침을]]과 영화 [[나 홀로 집에 2#s-6]]의 촬영 장소로도 유명한데 [[나 홀로 집에 2]]의 경우 당시 소유주였던 [[도널드 트럼프]]가 촬영장소 제공 계약 당시 자기를 카메오로 출연시켜야 한다고 우겨서 주인공 케빈이 로비에서 길을 물어보는 씬에서 카메오 출연한 바 있다.[[https://www.joongang.co.kr/article/20618049#home|#]] 플라자 합의 후 수십 년 뒤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 등으로 도널드 트럼프의 이미지가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출연 장면을 컬킨 본인의 늙은 모습으로 합성해 바꿔달라는 팬들의 온라인 청원이 있었다.]에서 진행한 환율 조정 합의이다. 미국이 인위적으로 달러의 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다른 나라 화폐들(특히 [[일본 엔|일본 엔화]])의 가치를 올리도록 한 것(평가 절상)이 합의의 골자다. 이를 통해 [[미국]]은 당시 경제적, 문화적으로 미국의 입지를 슬슬 침범하던 [[일본]]을 성공적으로 저지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. 1980년대 초 일본은 자국의 압도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자제품을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었으며, 그중 [[소니]]의 [[워크맨(음향기기)|워크맨]]은 미국에 돌풍을 일으켰고, 1970년대 [[석유 파동]] 이후 경제적이라는 인식이 생겼던 [[토요타]]를 중심으로 한 일본산 자동차 수출도 호실적이었다. 여기에 더해 일본이 엔저를 등에 업고 엄청난 대미 무역흑자를 연이어 기록하자, 꾸준히 경상수지 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은 플라자 합의를 통해 250엔이었던 엔-달러 환율을 120엔으로 대폭 조정하여 일본의 수출 경쟁력을 낮추는 데 성공한다. 엔고 시대가 도래한 일본은 경기 부양을 위해 [[양적 완화]] 정책을 펼쳤지만, 늘어난 통화는 투기 자본으로 흘러들어 부동산, 주식 등을 들썩이게 했고 결국 [[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]]를 만들어낸다.이 초대형 버블의 붕괴 이후 일본은 엄청난 경제 타격을 입고 이후 그 여파가 20년간 이어져 소위 '[[잃어버린 10년/일본|잃어버린 10년(혹은 2-30년)]]'이라는 초장기 불황이 나타나게 되었다. 이 때문에 플라자 합의를 '일본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인 원폭투하[* 이 합의가 이루어진 1985년은 [[히로시마·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]] 40년 이후이기도 하다.]'라고 평하기도 한다. 한편 당시 [[한국]]은 여전히 [[대한민국 원|원화]]의 가치가 낮았기에 일본 엔화와 비교하여 가격 경쟁력을 갖추어 수출 경쟁력이 커짐으로써 큰 수혜를 보았다. 하지만 플라자 합의에서 이루어진 환율 조정은 일본에 대해서만 한 것이 아니라 [[서독]]의 통화였던 마르크화의 가치 역시 절상시켰기 때문에, [[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|일본의 버블사태]]를 온전히 플라자 합의의 탓으로만 볼 수는 없다. 일본 [[버블 경제]]의 원인은 합의 이후 일본 정부와 [[일본은행|중앙은행]]의 잘못된 [[양적완화]] 정책과 대규모 토목 건설을 통한 경기 부양 정책을 썼던 것을 더 크게 본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